2016년 6월 8일 수요일

[IZE] 어떤 생리대 쓰세요?

+IZE에 기고한 글입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나는 생리를 빨리 시작한 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내 나이 10살 때 첫 생리를 시작했다. 상상 속의 생리는 빨간 피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팬티에 묻은 그 어두운 색깔의 초콜릿처럼 끈적이는 게 생리인 줄도 몰랐다. 생리를 시작하면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약간은 걱정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뭐, 오래된 일이라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생리를 시작하자 생리통도 함께 따라왔다. 학교 양호실에 가면 요즘 애들은 역시 빠르다며 선생님들이 수군거리기도 했다. 체육 시간을 워낙 싫어했던 난 혼자 침대에 누워서 아픈 배를 움켜쥐고 싫으면서도 좋은 휴식을 만끽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땐 진통제 한 알과 핫팩만 있으면 어느 정도 배가 가라앉곤 했다. 그랬던 생리통이 배신을 한 건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응급실에 실려 가서 진통제를 주사로 맞아야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면 생리대를 처음 알게 된 건 그때였다. 일회용 생리대가 생리통의 원인일 수 있다는 말에 인터넷에서 면 생리대를 사보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생리통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수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면 생리대가 딱히 내 생리통을 잠재워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 면 생리대를 사용하기는 했다. 생리통에 별다른 효과는 없었지만 일회용 생리대를 쓸 때에 비해서 피부 트러블의 빈도는 줄어들었다.

그렇게 면 생리대만 쭉 쓰던 어느 날 탐폰을 쓰게 됐는데, 이건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일단 알아서 나오는 족족 흡수를 하니 굴을 낳는 것만 같았던 찝찝한 기분에서 해방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생리를 할 때마다 생리대와 피부가 맞닿으면서 올라오던 알 수 없는 피부염도 탐폰을 쓰자 한층 나아졌다. 탐폰은 여러모로 꽤 편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아마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지금까지도 탐폰을 쓰고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의 그날, 탐폰을 평소처럼 끼우고 있는데 갑자기 매스껍고 머리가 아프면서 식은땀이 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보니 탐폰 쇼크 증상과도 비슷했다. 탐폰을 바로 제거하고 잠깐 누워 있으니 증상이 나아졌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다시 일회용 생리대나 면 생리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해서 난 생리컵을 사용하게 되었다. 생리컵의 장점은 셀 수 없다. 탐폰처럼 자주 갈아 끼울 필요도 없고, 한번 사면 최대 십 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으니 경제적인 데다가, 잘 끼우면 피가 거의 새지 않는다. 또 탐폰을 사용할 때 느꼈던 질 건조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면 생리대를 사용할 때처럼 시간과 공을 들여 찬물에 핏물 빨래를 하고 있지 않아도 되고, 5시간에서 7시간 정도마다 한 번씩 빼서 피를 따라 버린 후에 닦아서 다시 끼우면 되니 이 얼마나 간편한가. 몇 번 사용해보면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에 집이 아닌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면 생리대를 사용할 때는 생리대를 갈아 끼우고 나서는 더러워진 생리대를 집에 가기 전까지 들고 다녀야 해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생리컵은 그런 부분에서도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생리컵이 모두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면 생리대·탐폰 등을 사용하면서 내 피와 어느 정도 친해진 상태였지만, 피가 손에 닿는 것 자체가 싫은 사람이거나 피가 컵에 담긴 모습을 보는 것조차 괴로운 사람이라면 생리컵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역일 것이다. 질 안에 이물질을 넣는 것이 싫어 탐폰도 피해왔던 사람이라면 생리컵을 사용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할 테니 일단 한 번 사용해보라고 무작정 권하긴 어렵다.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값을 8% 이상 인상한다는 기사에 여성들은 저소득층 십 대 여성들의 생리대를 걱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양말조차 제대로 빨아본 적 없는 대한의 남성들은 “면 생리대를 쓰라”며 갑자기 열혈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면도기 혹은 담배 값과 생리대 값을 비교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여성들이 어떻게 피를 흘려왔고 피를 흘리고 있는지 남성들은 알지 못한다. 남성들의 입에서 더 이상 ‘피’에 대한 건방진 아는 척이 나오지 않도록 여성들이 서로 더 많은 피에 대해 이야기 나눠야 할 때다. 

며칠 뒤 나는 또 피를 흘릴 것이다. 내가 피를 흘리는 방법은 결코 다른 여성들이 피를 흘리는 방법과 같지 않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피를 흘리지만 어떤 여성은 6개월에 한 번 피를 흘리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생리통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여성들은 생리에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생리컵을 사용하고 있지만 어떤 여성은 일회용 생리대를 편하게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피를 흘리는 방법은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결코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약을 팔듯 ‘생리컵이 최고’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피 흘리는 방법에 대한 이 글이 당신이 피 흘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확실한 건, 남자들이 떠드는 생리에 대한 어떤 글보다도 내 글이 영양가 있을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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