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2일 목요일

[경향신문] 내가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유

+경향신문에서 은하선의 섹스올로지를 연재합니다. 


나에게도 한때 멋진 커밍아웃을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친동생이 우연히 내 사진이 실린 인터뷰 기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접했고, 내가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했으나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은 탓에 나는 갑자기 아우팅당해 버리고 말았다. 난 한동안 절망했다. 더 불쌍하게 보일 걸. 눈물이라도 흘릴 걸 그랬나. 차라리 닮은 사람이라고 잡아뗄 걸 그랬나.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몇년째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언니가 나의 파트너라는 사실을 내 입도 아닌 동생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엄마는 오열했다. 그리고 물었다. “너 원래 남자 좋아했잖아. 그럼 너는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거야? 무슨 애가 그렇게 줏대가 없어. 너 안되겠다. 차라리 한쪽을 정해.”
만약 내가 레즈비언이었다면 엄마가 받아들이기 쉬웠을까. 그건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양성애자인 나는 왜 남성이 아닌 여성 파트너와 사는 것을 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 질문은 왜 멀쩡한 ‘이성애자’처럼 살 수도 있는데 굳이 어려운 ‘레즈비언’의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남성도 좋아하니까 차라리 남성을 만나서 ‘이성애자’처럼 살았다면 정말 내 인생이 지금보다 나았을까.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은 받을 수 있었겠다만, 글쎄 다른 건 잘 모르겠다. 여성과 섹스하기 위해서 돼지발정제를 구매하고, 콘돔을 싫어해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남자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정말로 남자와의 삶이 그리도 권장할 만한 삶이란 말인가. 
‘추억은 방울방울’이 된 돼지발정제 
대선 유력 주자였던 홍준표가 오래전 자신의 자서전에 적었던 일은 아직도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돼지발정제로 강간 모의를 했던 일을 하늘에 한 점 부끄럼을 느끼지 않고 무려 책으로 남겼다는 점과 그 일이 터진 이후에도 홍준표를 향한 사랑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는 점은 아직도 놀랍다. 섹스해보겠다고 여성에게 돼지발정제를 먹였던 한 젊은 청년의 실수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감정이입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얼마나 섹스하고 싶었으면 그런 짓까지 했겠나. 나도 그런 적 있다. 그런 일 정도는 넘어가자. 본인이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친구가 그랬다고 하는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가. 
남성 연대의 끈끈함, 강간까지도 연대하는 힘. 
결국 나는 혹시나 했던 사실을 확인해버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동의 없는 섹스는 강간’이라는 
기본적인 사회적 합의조차 안된 사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피해자 여성이 아닌 가해자 남성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것은 남성 연대가 정말 그만큼 끈끈하기 때문인가. 
남성 연대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남성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만큼 
힘이 강력한가. 
왜 남성들은 남성 연대에 속하고 싶어 하는가.
난 이 ‘줄줄이 소시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이 사회의 남성들은 정말 여성과의 연애’를 바라고 있긴 한 것인가. 여성과의 ‘합의된 섹스’를 바라고 있긴 한 것인가. 그리고 얼마 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남자 마음 설명서>라는 책에 자세하고 친절하게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내정된 탁현민이 오래전에 쓴 책인데 얼마 전 화제가 되었다. 
부제목은 ‘남자가 대놓고 말하는’이다. 대놓고 말하겠다니 그럼 그 전엔 대놓고 말하지 못했었다는 말인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남성들이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어떤 시절이 있었나 보다. 목차를 보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가관이지만 그중에서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린 건 ‘콘돔을 싫어하는 여자’ 부분이었다. 우리는 그 지점에서 책의 저자가 콘돔을 싫어한다는 사실과 콘돔 존재의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가 대놓고 말하는’ 콘돔이 싫어 
콘돔은 피임과 성병예방을 목적으로 쓰이는 물건이다. 여성들은 개인적인 좋고 싫음으로 콘돔 사용의 여부를 선택하기 어렵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면 섹스 후 다음 생리가 시작되기 전까지 ‘임신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내가 올해로 남성과 섹스를 하지 않은 지 5년째인데 지금도 생리가 늦어지면 ‘설마 임신인가’ 생각을 하곤 한다. 임신 공포가 이 정도다. 임신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임신을 두려워하게 만들 정도인데, 콘돔 없이 남성과의 삽입 섹스를 한 이후에 닥칠 임신 공포가 얼마나 크겠나. 결국 콘돔이 싫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는 선언은 임신 공포가 전혀 없는 남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과 같은 일이 자신의 몸에 일어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저 싫다는 이유로 콘돔 사용을 거부하며 여성들에게 속삭일 수 있는 것이다. 콘돔을 싫어하는 여자가 매력 있다고.
이쯤에서 우리는 이 책의 제목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자 마음 설명서>. 탁현민의 마음 설명서가 아닌 ‘남자 마음’ 설명서이다. 이 책은 자신의 생각이 남성을 대표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쓰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 자부심은 살면서 만나왔던 남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굳어졌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믿음은 하루 이틀 사이에 굳어졌을 리가 없다. 끈끈한 남성 연대가 분명 이 책의 탄생에 거대한 힘을 실어줬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콘돔을 싫어한다는 말을 부끄럼 없이 내뱉고 한때 약물 강간을 모의했었다는 말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는 남성들이 끈끈한 연대를 이루고 있는 세상. 이 세상의 남성들은 여자와의 ‘합의된 섹스’를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여성과의 섹스 경험을 부풀려 떠벌리면서 남성 연대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뿐이다.
‘그럴 수도 있지’ 남자 연대의 끈끈함 
이런 세상에서 나는 여성 파트너와 사실혼 관계로 살지만 미혼 여성 취급을 받고, 왜 양성애자면서 남성이 아닌 여성과의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한다. 요즘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 끈끈한 남성 연대 속에서 ‘멀쩡한’ 남자를 찾아낼 자신이 없다는 다소 ‘겸손한’ 대답을 하고 있다.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이다. 여성이라면 당연히 남성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여성이라면 당연히 남성에게 사랑받고 싶어 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그런 남성들은 ‘쳐다보는 시선이 불쾌하다’는 뜻에서 나온 ‘시선 강간’이라는 단어를 듣고도 반성하기보다는 쳐다봐 주는 걸 고맙게 여기라며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의 시선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여성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 자체를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남성들은 결국 어디로 갈까. 남성 연대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욕을 먹곤 하는 이 시대의 남성들은 섹스해 주지 않는 여성에 대한 서러움과 분노에 몸부림치며, 결국 여성을 ‘따먹겠다’는 일념으로 큰돈을 지불하고 픽업 아티스트에게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 그 길도 평탄치 않을 것이다. 
부디 하루빨리 정신 차리고 그 남성 연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같은 취급받지 않고 싶다면 말이다.

댓글 8개:

  1. 너무도 공감합니다.
    저는 이 한국 남성들간의 연대와 수준이 너무 싫어서 연애를 거부하는 사람인데, 그 사실을 밝히면 여성들은 별 반응이 없는데 반해 남성들은 너무나 지나치게 공격적이더라고요.
    니가 철이 안 들어서 그렇다, 좋은 남자를 못 만나서 그렇다, 남자들이 다 그런거 아니다, 네 피해망상이다, 일단 사겨봐라, 남자를 싫어하다니 제정신이냐, 여자는 원래 남자 사랑으로 사는거다(ㅎㅎㅎ)
    발광에 가깝게 화내는 반응이 너무 많고, 가장 좋은 반응이 설득 정도라 저는 너무 의아했어요.
    남의 인생에 왜 화를 내지? 그것도 하나같이 짠듯이?
    헌데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되더라고요.
    한국 남성간에는 이미 여자가 사람이 아닌 '몸 달린 보지'라는 일종의 보급품이라고 합의되었다는 걸요.^^
    나눠줄 보급품도 부족한데 그 보급품이 보급되길 거부하니 일종의 위협을 느꼈나 봅니다.
    이해는 가요. 그래서 더 싫네요ㅎㅎㅎㅎㅎ
    친구 없다고 침팬지한테 말 가르쳐서 데리고 다니는 사람 없잖아요.
    픽업 아티스트가 가르치는게 결국 '인간을 대하는 최소한의 소양'이라는 것 조차 못 깨닫고 돈을 갖다 바치는 일부 된장남들을 보면 침팬지랑 썩 다른것도 모르겠구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앞으로도 쭉 거부할 예정이예요. 아닌건 아니니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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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페미니즘이 꽃필 수 있으려면 젠더 감수성이 따라줘야한다. 나의 젠더가 아닌 아닌 다른 젠더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연민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서로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동조하고 힘을 합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로 참 이 은하선이라는 사람이 안타깝다.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사람이 젠더 감수성이 한없이 0에 수렴한다. 자신의 여성이라는 젠더에 벗어나 남성이라는 반대 젠더와 서로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기 위한 지성과 감성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상대의 이해와 공감을 원한다면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시도라도 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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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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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냥 개소리 어째 그렇게 살았을까 이민가 그럼 되겠네 남탓 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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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은하선씨 본인이 사기꾼이면서 방송에나가서 사기당하면 멍청하다고 말하는거죠? 이해가 안되네요 ...저로서는 사람이...사람이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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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응원합니다. 제발 결혼하지 말고 비혼으로 무덤까지 가 주시길 응원합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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