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2일 목요일

[경향신문]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도대체 그게 뭐람

+경향신문에서 '은하선의 섹스올로지'를 연재합니다. 

머리가 긴 남자를 법으로 금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놀랍게도 1970년대 이야기다. 장발의 기준은 ‘남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머리’였다. ‘여자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머리가 길었던 남성들은 타인에게 불안감과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 머리를 짧게 깎였다. 2017년 지금, 이제 더 이상 길거리 장발 단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는 일 같은 건 없다. 원하면 남성도 허리까지 머리를 길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들은 ‘자유롭게’ 머리를 기르지 않는다. 머리가 긴 남성은 머리가 짧은 여성보다도 찾아보기 힘들다. 
왜 대다수의 남성들은 여전히 아직도 ‘자발적’ 장발금지령 속에서 살고 있을까.
몇 년 전 머리가 짧았던 나는 클럽에서 한 남성과 키스를 하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는 바로 사과를 하더니 ‘남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남성과 남성이 키스하는 줄 알고 때렸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남자와 키스하는 남자는 때려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게이’도 ‘남성’도 아니었지만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게이 남성에게 가해지는 혐오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성애자’처럼 보이지 않으면 주먹질을 당하고‘성소수자’처럼 보이면 오해라며 해명하는 사회
어떤 성별과 섹스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말하고 더 남성스럽고, 더 여성스럽기를 강요하는 세상
지난해 8월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회원 한 명이 종로에서 만취한 30대 남성에게 ‘호모새끼들아’라는 욕설과 함께 얼굴을 가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2011년에는 종로 근처에서 게이 커플이 손을 잡고 걷다가 남성 세 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외에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두려워 폭행을 당하고도 드러내지 못한 수많은 성소수자 혐오범죄의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호모’와 ‘게이’가 욕이 되는 사회에서 게이로 보이거나 게이일 수 있는 사람들, 게이인 사람들은 언제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폭행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한 게이 커플이 손잡고 길을 걷다가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네덜란드는 2001년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다. 그런 나라에도 성소수자 혐오가 존재한다니 암담하지만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누구라도 ‘이성애자’처럼 보이지 않으면 맞을 수 있다는 슬픈 현실 속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자’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성소수자들만 ‘이성애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과 ‘남성’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성정체성과 관계없이 성소수자로 ‘의심’받기 때문에, 지구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자신이 성소수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장법을 제안하며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출신 김기수씨는 ‘화장을 하는 남자’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라고 ‘오해’받는 연예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게이나 트랜스젠더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왜 내 아랫도리를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다”며 “규정짓지 말아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왜 그는 자신이 ‘이성애자 남성’임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할까. 그 어떤 연예인도 이성애자라고 ‘오해’받지 않는다. 이성애자로 ‘오해’받는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커밍아웃’하는 연예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꼬리표처럼 달라붙는 ‘게이’ 혹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절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연애 상대의 성별이 ‘여성’이라고 밝히면서까지 자신이 가진 ‘남성성’을 강조하는 작업을 멈출 수 없다.
성소수자라고 ‘오해’받는 연예인은 김기수씨뿐만이 아니다. 가수 조권씨는 데뷔 초창기부터 게이라고 ‘오해’받는 연예인이다. ‘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대중이 생각하는 ‘남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게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화장을 하거나 높은 목소리를 내거나 옷차림에 신경을 쓰거나 섬세한 손놀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대중이 선정한 ‘게이’가 될 수 있다. 연예인의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을 둘러싼 여러 가지 ‘루머’들을 보고 있으면 소위 말하는 ‘대중’들이 얼마나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한지 알 수 있다. 성소수자 혐오가 존재하는 한, 본인이 성소수자이거나 혹은 본인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더라도 이성애자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의 성정체성을 가벼운 가십으로 소비하는 것은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일이다.
나는 여성 파트너와 같이 살고 있는 바이섹슈얼, 즉 양성애자 여성이다. 사람들은 내 파트너의 성별에 따라 나를 레즈비언 혹은 이성애자로 본다. 내가 남자랑 사귀면 이성애자, 여자와 사귀면 레즈비언으로 본다. 여성을 만나던 내가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드디어 이성애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바이섹슈얼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성 파트너와 살고 있다고 말을 하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레즈비언이냐’고 물어보고 ‘이렇게 여성스러운 레즈비언은 처음 봤다’고 말을 한다. 이 말은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는 여성만 레즈비언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치마 입고 화장하는 여자가 레즈비언일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세상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반성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 사람 인생 최초의 레즈비언이자 ‘지나가는 레즈비언1’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다. 내가 아무리 ‘저 바이섹슈얼인데요’라고 말해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을 ‘남성’ 혹은 ‘여성’, 둘 중 하나로 나누고 어떤 성별의 사람과 섹스하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더더욱 남성스러워지기를 또는 더더욱 여성스러워지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체 남성스러운 것이 무엇이고 여성스러운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뜨개질을 좋아하며 긴 머리를 가진, 치마를 주로 입는 여성은 여성스러운 여성인가. 그렇다면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요리를 좋아하며 이종격투기를 즐겨보면서 취미가 뜨개질인 남성은 어떤가. 성소수자 혐오가 존재하는 세상,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길을 가다가 모르는 이에게 폭행을 당할 수 있는 세상에서 결코 우리 중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당신이 이성애자라고 해도 말이다.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