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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2일 월요일

[오마이뉴스] '섹스 얼마나 해봤냐'는 질문, 왜 들어야 하죠?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사교클럽, 일명 '야비클럽' 시리즈가 세 번째 인터뷰에 접어들었다.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모임도 준비 중이다. 40대에 접어들어도 투명인간이 되지 않는 법이 궁금해 시작했던 인터뷰 연재이지만, 회차를 거듭해갈수록 다른 질문도 늘어난다.

앞서 울프소셜클럽의 김진아 대표가 주장한 '여성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여성의 권익을 높이는 방법이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이 돼야 하는지는 확신이 없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백 년을 풍미했던 '으쌰으쌰' 문화가 과연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것일까?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정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야비클럽 세 번째 인터뷰이에게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세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은하선. 책 <이기적 섹스>의 저자, 앨범 <나도 모르는 나>를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EBS <까칠남녀>에 출연한 섹스칼럼니스트, 섹스토이 숍 '은하선토이즈' 대표, 비건을 위한 술집 '드렁큰비건' 공동 대표, 유튜브 퀴어방송국 '큐플래닛' 운영자, 퀴어 오케스트라 무지개음악대 단원. 은하선 대표의 활동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성소수자로 살며 다양한 성 담론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지난 20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 솔직하면서도 소신 있는 그를 만났다.

"시사평론가에게 '정치 해봤냐'고 안 묻잖아요"

 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  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 권우성

-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작가이자 가수, 연예인이자 운동가, 유튜브 방송 운영자,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거로 알고 있는데.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이다. 2015년 책 <이기적 섹스>를 썼고 EBS <까칠남녀>에 패널로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드렁큰비건과 은하선토이즈를 운영하고 있다."

- 대표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을까?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일은 드렁큰비건과 은하선토이즈 운영이다. 그렇다고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거나 방송을 하는 일이 부수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누군가 제게 '너는 하는 일이 많은데 그 중 뭐가 가장 재밌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다 재밌다. 어떤 것도 사이드잡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 그렇다면 섹스 칼럼니스트로 자신을 먼저 소개한 이유는?
"섹스 칼럼니스트라고 소개하면 방송에서는 '섹스' 자를 자르고 칼럼니스트만 내보낸다. 섹스 칼럼니스트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놀라는 걸 보는 게 재밌다.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네? 뭘 하신다고요?' 되묻는다. 시사 칼럼니스트나 시사평론가라고 했을 때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시사평론가들에게는 '정치 해본 적 있냐'고 묻지 않으면서, 섹스 칼럼니스트는 '섹스를 얼마나 해봤냐'는 질문을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증명을 해야 하는 건가. 가끔 이런 댓글도 달린다. '섹스 칼럼니스트인데 어떻게 양성애자야?', '섹스 칼럼니스트면 그만큼 많이 했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미아리에 있는 여자들이 섹스 칼럼니스트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섹스를 해체하는 작업을 한다. 섹스는 뭘까? 정상적인 섹스는 뭘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한다."

- 어쩌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됐나?
"이렇게 많은 일을 하자고 계획한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섹스토이숍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은하선토이즈은 원래 '걸스타운'이라는 퀴어와 여성을 위한 공간에 작게 붙어서 시작했다. 화장실로 가는 통로 옆에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드렁큰비건 운영도 마찬가지다. 파트너가 요리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게를 운영하고 사업을 할 만한 가능성을 열게 됐다. 이렇게 빨리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2016년에 <SBS 스페셜>에 나왔던 것을 계기로 방송국에서 러브콜이 종종 왔고, 2017년 EBS <까칠남녀>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게 됐다. 글도 쓰고 방송 일도 하고 작은 사업도 하는 사람이지만 계획했던 건 하나도 없다."

- 뭔가를 계획하지 않고 사는 삶이 불안하진 않은가?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계획이 없었다고 말하신다(웃음). 가끔 학교 다닐 때 일화를 이야기해 주신다. 내가 언제나 지각을 해서 교통지도를 하시는 녹색어머니회 어머님들이 내가 오는 걸 신호 삼아 일을 마무리하셨다고 한다. 내가 들어가면 나머지 학생들은 다 들어갔다는 뜻이니까. 어머니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으셨단다."

- 그럼 천성이 그렇다는 걸까?
"계획한 것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서, 계획한 걸 멈췄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예중, 예고, 음대를 나왔다. 오보에를 계속했다. 음악을 계속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음악은 안 하고 작가나 사업가로 살고 있지 않나.

음악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에 반해, 방송과 글쓰기는 예상치 않게 반응이 좋았다. 내가 계획하거나 노력한다고 해서 어떤 일을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남들이 내가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

대신 생각지도 못 하는 일들이 커졌다. 책을 낸다거나, 파트너가 가게를 하게 되어서 같이 사업을 하게 되는 일들, 방송을 하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계획하기를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걸 한다"

 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  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 권우성

심보선 시인은 최근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에서 예측과 예감의 차이를 이야기한 바 있다.

"예측과 예감은 미래를 상상하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이다. 예측은 연속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미래, 통제는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준비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예감은 연속성과 정체성이 깨지는 방식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자의 출현으로부터, 내가 '무엇'이라고 임의적으로 명명하지만 사실 '무엇'이 아닌 어떤 존재의 출현으로부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심보선 시인의 말대로 예감이 삶을 변화시키는 수수께끼 같은 힘을 감지하는 것이라면, 은하선 대표는 예측하기보다는 예감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어떤 일들이 그를 '예측'이 아닌 '예감'의 인생으로 끌어 당겼을지 궁금했다.

- 왜 오보에의 길을 그만뒀나?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글 쓰는 일, 방송하는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트레스였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할 때면 잘한다, 재능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노력한 것보다 성과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커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두려움이 너무 컸다.

놓고 싶었지만, 오보에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하러 갔는데, 그곳에서 공부하면서도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오보에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들었다. 계속되는 오디션이나 연주가 지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나를 성추행한 일이 있어서, 한국에서 음악을 하기에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음악은 인맥이 중요하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 오보에는 고급 취미가 됐다. 지난해부터 퀴어 오케스트라 무지개 음악대를 만들어서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 등에서 연주했다."

- 그럼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일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원래 '야망'을 물으려고 했었다. 
"사실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야망'이라는 단어 때문에 멈칫했다. '여자들의 야망'이라는 단어가 너무 신자유주의적인 서사이지 않은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사다. 난 이런 야망이 있었고, 사람들을 이렇게 바꾸고 싶었고, 세상을 이렇게 좋게 만들고 싶었다는 식의. 그런 서사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넌 뭐가 제일 좋아?', '궁극적으로는 뭘 하고 싶어?', '목표가 뭐야?' 그렇게 묻는다. 나는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 꿈도 크지 않다.

한 번은 누군가 인터뷰에서 '드렁큰비건을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와 파트너는 '키울 생각 없다'고 답했다. 왜 굳이 뭔가를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성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작게 시작하는 게 좋다. 조금씩 키워나가는 게 좋다."

'야망'이 누군가에게는 '노오력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착취의 프레임으로 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큰 사람이 되어 사회에 기여한다'는 식의 스토리는 찬양 받지 못한다. 작더라도 내 개인의 것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때가 아닌가.

(* 은하선 인터뷰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기적 섹스 -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은하선 (지은이), 동녘(2015)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Oh Joy Sextoy] Eun Hasun Interview by Ryan Estrada & kim hyun Sook

+Oh Joy Sextoy의 Erika Moen 작가님이 Ryan Estrada & kim hyun Sook 과의 인터뷰를 카툰으로 올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11월 1일 일요일

[인터파크 북DB] 칼럼니스트 은하선 '언제까지 '그놈'들 눈치만 볼텐가?'

칼럼니스트 은하선 “언제까지 ‘그놈’들 눈치만 볼텐가?”
 
 

“그래, 나 섹스 좋아한다. 그래서 어쩔래?”

이렇게 당당하게 선언하고 나선 스물일곱 살 여성이 있다. 이름은 은하선. 중학교 때 처음 섹스를 했고, 성인용품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섹스토이와 본격적으로 친해졌다. 지금은 섹스에 관한 글을 쓰며 섹스토이를 수집하기도 한다. 또 여러 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이기적 섹스>는 그녀만의 유쾌하고 당당한 목소리가 담긴 책이다. 어쩌면 이렇게 솔직하고 당당하면서 재밌을 수 있는 걸까? 책장을 넘기며 감탄하게 된다.

여성이 섹스를 입밖에 내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말해진다손 치더라도 주로 ‘상대(남자)를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하는 타인의 욕망에 충실했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기적’으로 내 욕망을 알고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주장한다. 한 여성의 일기장 같기도, ‘성’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교과서 같기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누리는 성생활에 대한 르포 같기도 한 이 책의 존재가 귀하고 또한 고마운 이유다.

지난 달 인터뷰를 위해 홍대 인근 한 음식점에서 작가 은하선을 만났다. 공간 한 편에는 그녀가 손수 모은 섹스토이 60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외국에서 유학 중 잠시 귀국한 참이라는 그녀는 자신의 책이 “훌륭한 페미니즘 입문서”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이 반드시 배운 사람이나 전문 활동가만의 것이 아니라 이런 것도 페미니즘일 수 있다”는 걸 자신의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단다. 책에서 주장한 ‘이기적 섹스’에서부터 최근 떠오른 메르스 갤러리 논쟁에까지 이어진 그녀와의 대화 한 토막을 이 자리에 공개한다.


“남자들과 잘 지내는 법보다, 자유로워지는 법에 대한 이야기”

Q 인터뷰 준비를 하다가 작가님 SNS 계정에 들어가봤습니다. 섹스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이유로, 이상한 메일이나 메시지도 많이 받으신다고요.

여자가 섹스에 대해 얘길 하거나 자유롭게 자기 욕망을 얘기하면 남자 입장에선 자기가 원할 때 자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원할 땐 자주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을 땐 질척대지 않고 꺼져주는 걸 원하나 봐요. 제가 섹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예 취향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남의 취향은 알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누군가의 취향일 거라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 굉장히 부러워요. 저는 바이 섹슈얼이라 여자랑 섹스한 얘기도 글로 쓰는데 지금까지 제게 섹스 하자고 메일을 쓴 여자는 한 명도 없었고 다 남자였어요. 여자들도 그렇게 더 뻔뻔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런 댓글이나 반응을 보고 상처받을 때는 없나요?

그런 걸 보면서 상처받기 보다는 비웃는 악취미가 있어요. “쯧쯧, 이러니까 발전을 못 하지”하면서 다음 글 구상 때 소재로 쓰죠. “스물일곱 살이 뭘 안다고 이런 책을 내냐”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저는 열 다섯 살 때부터 섹스했으니까, 그 사람이 서른 살이면 저나 그 사람이나 섹스를 해온 역사는 비슷하거든요.

제 책은 남자들이 읽었을 때 불편한 책이에요. 반면 지금껏 이 책 보고 욕한 여자들은 하나도 없었어요. 최근 메이저 언론에선 처음으로 ‘경향신문’에 얼굴을 드러내고 나이를 공개했는데, 그 기사에도 댓글이 여럿 달렸어요. “걸레다”, “줘도 안 먹는다”, “스물일곱 살이면 뭘 해봤길래 어린 년이 설치냐”는 식으로요. 그 댓글을 보면서 오히려 “아, 내가 이래서 글을 썼었지”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Q 책 제목이 ‘이기적 섹스’입니다. 이 책을 쓴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남자들과 같이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해선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잖아요. 남자들을 어우르고 달래고, 남자들한테 잘 보이는 방법, 남자들과 연애하는 방법. 여성으로서 그런 남성들을 꼬시는 전략을 다룬 책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저는 그런 내용은 쓰고 싶지 않았어요. 이성애자 연애 시장에서 여자가 잘 먹히는 방법은 소위 말하는 ‘여자짓’을 하는 방법밖에 없잖아요. 그걸 원한다면 다른 책들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남자들과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보다 어떻게 하면 남성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Q 책을 읽으며 종교 때문에, 결혼 전이라, 나이가 어려서 등등 섹스 할 수 없는 이유도 참 여러 가지라 느꼈습니다. 이런 한국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이기적 섹스는커녕,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 아닌가요?

일단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 자라온 이상 사회적 시선이나 억압에서 완벽하게 자유롭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남자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추 달렸다고 추앙 받고, 중고등학교 때는 동네 형들이 자위하는 방법도 알려주지만, 여학생들은 그런 관심은 전혀 받지 않고 자랐거든요. 시작부터가 다른데 그렇게 자란 여자들이 어른이 되는 순간 갑자기 섹스에 대해서 모두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방송에선 갑자기 여자들이 섹스에 대해서 얘기하고, 얘기도 잘 들어주는, 소위 섹스에 대한 농담도 잘 받아 치는 여자들이 쿨한 것처럼 얘기가 돼요. 그렇게 받아주다가도 다리 벌리면 금방 ‘걸레’가 되는 사회잖아요. 천천히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섹스를 많이 하는 게 성 해방이라 절대로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원하지 않을 때는 섹스를 하지 않는 게 성 해방이에요. 무조건적으로 섹스에 대해 말하고, 쿨해 보이고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이 사람 저 사람과 자는 건 학대죠.

Q 지금까지 섹스 워크숍을 여러 차례 진행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워크숍에서 만난 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책에도 소개했던, 50대 여성분이 기억에 남아요. 늘 부모님이 섹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셨대요. 엄마는 섹스를 너무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정작 자신은 결혼생활 기간에 섹스에서 전혀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던 거예요. 남편은 계속 바람이 나고, 괴로운 결혼생활에서 이혼 후 다른 분과 섹스를 했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을 맛보셨대요. 그 후로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섹스를 해오고 계세요. 얼마 전 만났는데 잘 연애를 하고 계셔서 좋아 보였어요. 보통 50~60대 여성은 성적 매력이 떨어지거나 갱년기가 지나면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물론 섹스를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섹스를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 분들의 욕망은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잖아요. 자기 욕망을 찾아 가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좋아 보였던 분이라 기억에 남아요.

“섹스 많이 하는 것 성해방 아니다”

Q “성기 삽입이 아니면 ‘진짜 섹스’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상상력을 꽃피우기란 어렵다.”고 하시면서 다양한 방법의 섹스를 이야기한 부분도 인상 깊게 읽었어요.

남성들의 성기만 집어넣으려 하는 세태를 비꼰 거예요. 사실 남자 성기가 아니어도 섹스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레즈비언 섹스에서 딜도는 남자 성기 대용이 아니라, 손 대용, 더 자유롭게 섹스를 할 수 있는 도구거든요. “저렇게 딜도를 쓸 거면 남자랑 하면 되지, 왜 자기네(여자들)끼리 해?”라는 남근중심적 발상이,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여자들간의 섹스를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인과 섹스 경험 있는 여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도 남근중심적 생각에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쟤는 저렇게 큰 애랑 자봤으니까 나같이 힘없는 조선 XX랑은 안 자 줄 거야.” 혹은 “내가 만족스럽지 않을 거야”라는 경계심과 공포가 바탕에 있는 거죠. 남자들도 손, 입, 딜도 등 여러 가지로 생각하면서, 좀 더 자유롭게 상상했으면 해요. 섹스의 스펙트럼을 삽입에서 끝내지 않으면 섹스가 더 재미있어질 거예요. 남자들은 성기 크기를 얘기하면 격분하는데 그걸 바꿔갈 방법도 남자들에게 있어요. 남자들이 지금처럼 남근 중심적으로 섹스를 하지 않으면 여자들이 그렇게 얘기 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자신들이 바꿔나가야 할 문제예요.

Q 책에서 ‘나에게 딱 맞는 섹스토이 사용법’도 소개하셨어요. 인터뷰가 진행 중인 이 곳에 ‘은하선의 빈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섹스토이 전시도 열고 계신데요. 섹스토이 수가 꽤 많아요. 어떻게 이런 전시를 열게 되셨나요?
제가 직접 모은 섹스토이 60점 정도를 전시했어요. 개중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도 많고요. 일단 제가 모은 섹스토이를 자랑하고 싶어서 만든 자리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섹스토이에 대해서 아직까지 잘 모르거나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그들이 섹스토이에 더 쉽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어요. 과거 섹스토이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일요일마다 워크샵을 하면서 사람들이 와서 직접 보고 만져보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 때처럼 섹스토이를 통해서 섹스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열게 됐어요.

Q “중요한 건 ‘남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내 욕망’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내 욕망을 알고 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섹스를 하고 싶지만 만약 주변의 시선이 두렵다면 무엇이 나를 억압하는지, 그 억압의 실체나 대상을 생각해 보고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중요해요. 이런 일은 주변 친구들의 응원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무리해서 섹스를 하거나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무서워서 섹스를 못하는 건 둘 다 비슷한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계발서에는 ‘남자들이여 이런 걸 하지 말아라’, ‘여자들은 이런 걸 싫어한다’같은 대목이 나와요. 저는 그게 정말로 여자들을 위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을 퉁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요. ‘여자들은 이렇다’고 규정짓고, 그 틀 안에 들어가지 않는 여자는 여자가 아닌 걸로 보고 싶어하는 거죠.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없다

Q 페미니즘에서 여성이 행복해지면 남성도 함께 행복해지는 거라고 말하잖아요.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찾으면 남성도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인가요?

페미니즘이 여성이 행복해지면 남성도 행복해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모든 소수자가 차별 받지 않는 거예요. 보통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심으로 생각을 하니 모든 걸 남성의 눈으로 보게 되죠. 여성들 조차도요.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요. 이때 다수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도록 하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Q 평화로운 합의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장이신가요?

당연히 평화롭지 않죠. (지금까지) 가만히 누워 있으면 밥 갖다 줬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밥 차리라는 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원래 “좋은 아침이야~”하면서 여자 엉덩이 두드리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못하게 하면 싫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남성들과 같이 가는 페미니즘을 경계해요. 제 책을 읽고 남자들이 불편했으면 좋겠지, 남자들이 편해지는 책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불편해져야 같이 가죠. 불편해야 발전이 있지, 아무도 불편하지 않다면 할 필요 없는 거죠. 이런 글 쓸 필요도 없고요.

Q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와 여쭤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메르스 갤러리(디씨인사이드에 개설된 게시판으로 ‘일베’의 방식을 차용해 여성혐오 행태를 비꼬는 글이 올라온다-기자 주)도 등장했고, 그곳의 이용자인 메갈리안에 대해 갑론을박이 한창인데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식의 운동 방법에 대해서 지나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무척 재밌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페미니스트들은 굉장히 많은 방법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왔고, 책도 냈지만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그 목소리 파급력이 그렇게 크진 않았어요. 메르스 갤러리의 파급력이 이 정도로까지 커진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혐오에 대해서 혐오로 받아 치는 게 맞느냐는 반증도 있는데요.

저는 그 말이 이 말처럼 들려요.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더 평화롭게 갈 수 있는데, 왜 파업을 하고, 왜 단식을 하고, 왜 크레인에 올라가냐”라고 하는 말처럼요. 여자들이 이렇게까지 나오게 만든 사람을 비난 해야죠. 평화로운 싸움 같은 건 없어요. 미친년이 날뛰면 날뛴 미친년이 문제가 아니라, 미친년을 날뛰게 한 사람이 문제인 거죠.

Q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나요?

자기계발서는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말해요. 하지만 저는 이 책에 ‘무엇이 맞다, 틀리다’라고 쓰지 않았어요. ‘이래도 되겠다’, ‘내가 좀 이래 봐도 되지 않을까?’ 제 책이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하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Q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우선 책이 나온 지 열흘 만에 2쇄 들어간 것이 대단한 것 같아요. 처음엔 애인이랑 “100권이나 팔리려나?” 고민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는 걸 알고 덕분에 조금 자신감을 얻었어요. 두 번째 책도 생각해 보려 하고 있고, 섹스와 관련된 재밌는 활동이나, 워크샵도 하면서 계속해서 지금 같은 활동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껏 계획한대로 간 적이 없기 때문에, 물 흐르듯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글 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