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소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소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9년 7월 17일 수요일

[페이퍼] 여름은 뜨겁고 감기와 고양이는

+PAPER 2018 여름호에 실린 글입니다.

1. 

어제도 혼났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혼나고 나면 내가 정말 잘못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잘못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나.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분이 나쁘다. 난 왜 그 상황에서 죄송하다고 해버린 걸까. 내가 만만해 보여서 그런 걸까. 아니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한테 왜 그런 거지. 머리 스타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란 머리는 아무래도 그렇다. 머리가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내 직업을 맞추려고 한다. 

“디자이너 맞죠? 아, 아니다. 그럼 사진 찍으세요?” 

여기서 그만두면 참 좋으련만 맞출 때까지 멈추질 않는다.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도 별로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면서 왜 관심이 있는 척을 하는 걸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꼭 한마디 씩 한다. 콧물감기가 생각보다 오래간다. 아, 콧물감기가 아니라 코감기. 어제도 이것 때문에 혼났다. 약국에 약을 사러 갔다가 일어난 일이다. 

“콧물감기약 주세요.” 

아니, 콧물이 흐르는 감기니까 콧물감기 아닌가. 그런데 약국 아주머니가 “콧물감기가 어디 있어. 코감기지. 코감기!”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코감기를 콧물감기라고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낼 건 뭔가. 콧물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계속 흐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대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계절도 콧물도 마음도 고양이도 어떤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더워질 줄은 몰랐다. 29도라니.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덥다. 너무 덥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난 오뉴월 콧물감기 아니, 코감기에 걸려서 이렇게 훌쩍거리고 있다. 날씨는 덥고 콧물은 흐르고 나나는 보이질 않는다. 나나는 내가 밥을 챙겨주고 있는 고양이다.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리기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며칠 째 밥을 먹으러 오질 않는다. 

1년 넘게 밥을 챙겨주고 있지만 나나는 나와의 거리를 지킨다. 부드럽고 하얀 나나의 털을 만져보고 싶어서 몇 번 나나에게 손을 뻗어봤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도 내 손이 가까이 가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멀리 도망쳐버린다. 내가 물론 나나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지만 그것만으로 나나의 마음을 열 수는 없다. 겨우 밥이나 챙겨주면서 생색을 내면 안 되는 법이다. 사람도 고양이도 돈으로 마음을 열 수는 없다. 나나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방법에 대한 책은 있어도 길고양이의 마음을 여는 방법에 대한 책은 없으니까. 무수히 많은 연애 서적이 있어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연애 서적 같은 건 없는 것과 비슷하다. 이 세상에는 책에 나오지 않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다. 나나는 보이질 않았고 난 마음에 초조해졌다. 사라진 사람도 찾기 힘든데 갑자기 사라진 길고양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가깝다고 느낀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난 나나가 밥을 먹으러 올 때 말고는 무엇을 하고 어딜 가는 지 아는 게 없었다. 어디 갔을까. 어딜 갔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에어컨이 고장이 나버렸다. 왜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이 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리기사를 불렀지만 갑자기 더워진 탓에 일이 밀려 오늘 당장 오기 어렵다고 했다. 약 기운 때문인지 계속 눈이 감겼다. 덥고 졸리니 정신이 없었다. 나나는 주로 낮 시간에 밥을 먹으러 왔다. 혹시 모르니 집 앞에 밥을 들고 나가봐야 하지만 눈이 자꾸만 감겼다. 만약에 나나가 왔는데 내가 없다면 얼마나 실망할까. 아니지. 나나는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다닐 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며칠씩이나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아니다. 정말 아파서 며칠 동안 끙끙 거리느라 못 왔을 지도 모른다. 나가봐야한다. 해가 뜨거웠지만 바람이 살짝 불어서 오히려 집보다 밖이 더 시원했다.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초록색 나뭇잎이 빛 때문에 반짝거렸다. 저런 곳에 매달려있는 기분은 어떨까. 가벼운 나뭇잎의 삶 같은 건 나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어떤 고양이들은 높은 나무에도 휙휙 오르곤 하던데 혹시 나나가 나무 위에 올라가있는 건 아닐까. 난 고개를 들어 주위에 있는 나무를 살펴봤다. 그러나 역시 그럴 리가 없었고 오늘도 나나는 오지 않았다. 난 집에 다시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를 한 캔 꺼내서 마셨다. 감기약을 먹는 동안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나를 혼낸 사람의 말은 듣지 않을 거다. 
콧물감기나 코감기나 그게 그거지. 대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혼을 내고 그러나. 복수의 의미로 난 맥주를 마실 것이다.

2. 

복수는 실패했다. 감기는 더 심해졌다. 코는 사이좋게 한쪽씩 번갈아가면서 막혔다. 코가 막히니 머리도 아팠다. 아무래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으니 순환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야 할까. 물수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코 위에 올려봤다.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의사 선생님한테도 혼나면 어쩌지. 왜 이제 왔냐고 혼이라도 나면 난 어쩌지. 혼나는 일 만은 피하고 싶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혼날 일도 없다. 6개월 전에 헤어진 A도 나에게 화를 자주 냈다. 마지막으로 A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해!” 혼이 나면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사과를 했을 뿐이었는데 그게 싫었나보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자동적이었을 뿐이다. 정말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건 아니었다. A는 한숨을 쉬더니 나를 두고 가버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은둔형 외톨이 같은 건 아니다. 그냥 난 혼자가 편할 뿐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피곤하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고양이를 기다리는 일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갔을 경우엔 고양이 탐정에게 찾아달라고 의뢰를 하기도 하던데 길고양이를 찾아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모르니 검색이라도 해볼까. 뭐라고 검색을 해야 되지. 상수동 고양이? 아닌데 상수동 길고양이? 이것도 아니다. 상수동 길고양이 다리 부상? 정말 모르겠다. 검색이 가능하긴 한가. 모르는 일 아닌가. 혹시라도 누군가 다리 다친 나나를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갔을 수도 있지 않나. A가 싫어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 좀 그만하라고 혼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A가 없으니까 괜찮겠지. 포털사이트보다는 어쩌면 인스타그램 같은 데에서 검색을 해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A는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했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올렸다. 어디에 가서 어떤 걸 먹었는지 매일매일 올렸다. A가 셀카를 올리면 친구들은 하트를 눌렀다. A는 나랑 같이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싶어 했으나 난 언제나 싫다고 했다. A의 친구들은 커플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리곤 했다. A는 친구들처럼 나랑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 했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A는 뭐 어떠냐면서 나한테 답답하다고 말했다. A는 커플링을 맞추자고 했지만 난 그것도 싫다고 했다.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대체 왜 그러냐는 A에게 난 언제나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그 때 사진을 올려도 된다고 했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어차피 지난 일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상수동 고양이를 검색하자 총 209개의 사진이 나왔다. 난 밑으로 내려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혹시라도 나나의 사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어? 이거 나나 아닌가? 나나처럼 하얀 털에 커다란 점박이 무늬가 있는 고양이 사진이다. 사진을 클릭해보자 정말 나나였다. 세상에 나나를 찾다니. 사진 속 나나는 상수동 길 위가 아닌 철장 안에 있었다. 메시지라도 보내봐야겠다. 정말 이 사람이 나나를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간 사람일까. 어쩌면 나나와 비슷한 고양이 아닐까. 길고양이들은 쉽게 다치는 법이니까. 다리가 다친 나나를 닮은 고양이일 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일단 보내보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보내면 답이 오거나 안 오거나 둘 중 하나겠지. A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자주 받곤 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만나자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A는 이게 다 커플 사진을 올리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난 그래도 내 얼굴이 A의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건 싫었다. 좁은 세상인데 무슨 일이 있을 지 알 수 없으니까. A의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에 나가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답답했을 거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정말 그게 최선이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까. 막혔던 왼쪽 코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순간 메시지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이 고양이는 제가 몇 달 전부터 집 근처에서 밥을 줬던 아인데 얼마 전에 다리를 다쳤더라고요. 아는 분에게 덫을 빌려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지금 입원 중이예요. 혹시 괜찮으시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실래요?”
내일? 내일 별다른 일이 없긴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건 신경 쓰이는 일인데 괜찮을까. 그래도 나나를 치료해주신 분인데 괜찮은 사람 아닐까. 그걸 떠나서 나나를 만나고 싶었다. 나나가 맞을까. 아니 나나가 맞겠지. 나나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나나란 말인가. 난 바로 답장을 했고 약속 시간을 잡았다.

3. 

나나는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병원 안 쪽 어두운 방에 있었다. 각기 다른 철장 안에 있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나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나의 발에는 얇은 비닐이 묶여있었다고 했다. 비닐봉지를 뒤지다가 그런 모양이었다. 매일 밥을 챙겨줬는데도 나나에겐 부족했나보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비닐이 살을 파고들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흘만 더 있으면 퇴원을 해도 좋다며 입원한 김에 중성화 수술을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길고양이는 수술 후 귀를 살짝 커팅 할 경우 저렴한 비용으로 수술을 할 수 있다면서. 내가 잠깐 망설이자 그녀가 “반반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커피라도 한잔 할래요?”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가 커피를 마시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에어컨 수리기사는 내일 온다고 했으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나나를 보고 나니 마음이 왠지 놓여서 난 그녀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여름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A는 언제나 따뜻한 커피만 마셨다. 심지어 더운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A를 보고 있으면 가슴에 땀이 흘렀다. 처음 보는 사람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름엔 차가운 커피가 역시 최고다. 각 얼음을 입 안에 넣고 굴리자 온 몸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벌써 커피를 다 마시고 와그작 소리를 내며 얼음을 먹고 있었다. 차가운 커피의 맛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카페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겠지. 

“고양이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닌가.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밥도 챙겨주고 구조까지 해서 병원에 데리고 왔겠지.



“네. 고양이 좋아해요.” 
“그렇구나.” 

다시 정적이 흘렀다. 대화는 어렵다. 괜히 커피를 마시러 온 걸까. 그 때 그녀가 갑자기 나를 보며 ‘풉’하고 웃었다. 

“아니 왜 웃으세요?” 

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역시 사람은 만나는 게 아니었을까. 집에만 있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나나가 보고 싶어서 나온 것뿐인데 역시 병원 주소만 받았어야했다. 

“그렇게 갑자기 사람보고 웃으시면 기분 나빠요.”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자꾸 나왔어요.” 

내가 귀엽다고? 그럴 리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내일도 저랑 병원에 올래요?” 내일? 에어컨은 오전에 고치기로 했으니 오후에는 시간이 괜찮다. 그런데 내일 또 만나도 될까. 여름은 뜨겁고 감기는 여전한데 나나는 병원에 있고 나는 갑자기 내가 귀엽다는 여자와 마주보고 있다.

2019년 7월 15일 월요일

[젤리와 만년필] 누구세요 나나는

+고양이 문예지 젤리와 만년필 2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1.

나나가 다리를 다쳤는지 며칠 째 절뚝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나는 내가 밥을 챙겨 주고 있는 고양이다. 주로 저녁 무렵에 집 근처에 나타난다. 길고양이를 잡아본 적은 없었다. 어떻게 잡아야 되지? 일단 참치 캔이라도 준 다음에 뒤에서 수건으로 갑자기 습격하면 될까? 아니다. 그럼 너무 놀라겠지. 당연히 도망치겠지. 동물농장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덫 같은 것으로 잡기도 하던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 덫은 어디서 구할 수 있지. 일 년이 넘도록 밥을 챙겨 주고 있지만 나나를 만져본 적은 없다. 아무리 길고양이라지만 서운한 건 사실이다. 밥까지 챙겨 주는데 한 번쯤은 만질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길고양이는 사람과 가까워져봤자 괜히 안 좋은 일만 겪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서운하지 않다. 내가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있는 나 이외의 생명체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가까워져봤자 이별할 때 남은 질척거리는 감정을 처리하기 더 힘들 뿐이다. 만나면 이별하기 마련이다. 어떤 관계라도 이별을 피할 수는 없다. 게다가 길고양이라니. 다른 동네에 가버리면 그만이다. 관계를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어떠한 관계도 스스로 책임질 수 없다. 관계가 변하는 일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신의 영역에 가깝다. 인간관계를 자신의 노력으로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 번 틀어진 관계는 원상 복구할 수 없다. 아무리 보고 싶다고 발버둥 쳐도 다시 만날 수 없는 관계가 있는 법이다.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나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물론 난 법적으로 성인이다. 술도 마실 수 있고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을 만큼 돈도 벌고 있고 원한다면 고양이를 집에 들일 수도 있다. 그래. 고양이. 엄마는 고양이를 참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어릴 적 엄마는 일본식 주택에 살았는데 쥐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의 엄마는 고양이를 몇 마리 집에 들였다고 한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우리 집에도 고양이가 한 마리 생겼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견이다. 지금도 건강하다. 이제 몇 년 만 더 있으면 스무 살이 된다. 난 견이를 통해서 관계에 대해서 배웠다. 난 견이를 좋아했지만 견이는 날 지독하게도 싫어했다. 지금도 엄마 집에 가면 견이는 나에게 하악질을 해댄다.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에게만 한다는 바로 고양이의 그 하악질 말이다. 견이는 하악질을 할 때 온 몸의 털을 세우고 입을 커다랗게 벌린다. 아마 그건 견이가 나에게 하는 욕이겠지. 견이를 좋아하지만 굳이 견이가 이제 와서 나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서운하지 않다. 괜찮다. 서운하다는 감정은 귀찮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면 서운하지 않다. 가까워지지 않으면 기대를 할 일이 없고 기대를 하지 않으면 서운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은 관계의 문제다.그렇다고 내가 사람이나 고양이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고 착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난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게 싫을 뿐이다. 조금만 가까워지면 너무나 쉽고 뻔뻔하게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지겹다. 난 내가 제일 좋다. 혼자서 밥 먹고 술 마시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다. 그럼 나나의 밥은 왜 챙겨줬느냐고? 나나는 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길고양이는 집시와도 같은 존재다. 나는 나나가 내가 주는 밥을 먹을 때 외에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나는 내가 무엇을 먹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런 관계다. 난 이런 관계가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관계가 좋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귀찮다. 그렇지만 나나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난 괜찮을까. 아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생각하지는 말자. 미래를 예측하고 두려워하면 인생이 괴로워진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나나의 다친 다리를 어떻게 치료해 주어야 하지?

2.

나나를 데리고 동물 병원에 갔다. 나나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덫을 빌리는 과정도 순조로웠다. 덫 안에 참치 캔을 세 덩이로 나눠서 넣어 놨더니 나나가 알아서 덫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이었다. 병원에 가서 보니 나나의 다리에 나일론 실 같은 것이 감겨 있었다. 실을 제거했으나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탓에 뼈가 살짝 녹았다고 했다. 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자유로운 영혼인 나나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며칠 병원에서 쉬면 몸도 좋아지지 않을까. 며칠만 늦게 왔어도 다리를 잘라 내야 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괜히 미안했다.물론 내가 나나를 꼭 고쳐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 의리 같은 건데 모르겠다. 의리는 친한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나나와 나는 하루 중 몇 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만을 공유하는 사이다. 그걸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나는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을까. 나는 그저 밥을 주는 사람 그 이상 이하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실 친한 사이 그러니까 친구가 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 언제나 나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다. 하지만 난 친구가 없었다. 친구가 없다면 친구랑 사이좋게 지낼 수가 없다. 그런데도 엄마는 매일 아침 학교 가는 나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했다. 친하다는 것이 어떤 상태를 뜻하는 말인지는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면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화장실을 같이 가는 사이라면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두 상황을 합쳐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면? 미안하다. 대답을 원하고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자꾸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솔직히 말하면 난 사람이 불편하다. 친하게 지내자면서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들은 정말 무섭다. 나는 내가 좋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매력적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글쎄 조금 다르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나에게 먼저 친해지자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다가온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고 수상한 일 아닌가. 보험 아니면 다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을 다단계에 탕진할 수는 없다. 사람보다는 돈이 좋다. 이제까지 친구 없이 잘 살았는데 이제 와서 친구가 생긴다고 뭐 좋을 일이 있겠나. 게다가 돈이 있어야 나나에게 맛있는 참치와 츄르를 먹일 수 있다. 영화도 볼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고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사람과의 관계에 인생을 맡기면 내 인생을 내가 예측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 나를 위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봤자 뒷담화의 주인공이 될 뿐이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의 씹기 좋은 오징어가 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나만 모르면 된다. 그게 편하다. 먹고살기 위해서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온갖 아부를 떠는 삶은 끔찍하다.난 지금이 좋다. 더 큰 돈을 벌고 싶지도 않고 친구나 애인이 필요하지도 않다. 처음부터 친구가 없었던 나 같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모른다. 나에 대해 알게 된다면 모두가 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난 나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이렇게 길게 내 이야기를 한 건 정말 처음이다. 어차피 당신은 한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니까 내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안심이다. 그렇다면 우린 친구일까 친구가 아닐까. 나의 속마음을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한 적은 처음이지만 당신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나나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나의 언어와 나의 언어는 다르니까. 그렇다면 언어가 중요한 걸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3.

나나가 퇴원하는 날이다. 일이 바빠서 한 번도 병원에 문병을 가보지 못했다. 미안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내 얼굴을 보면 반갑기보다 나를 더 미워하게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면서 미안해봤자 소용이 없다. 나나를 처음 잡았던 덫에 나나를 넣어서 택시를 타고 동네로 왔다. 나나의 발은 다 나았다고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밥도 잘 먹었다고 했다. 택시 트렁크에 덫을 실으면서 많이 걱정했는데 나나는 얌전했다. 그래도 많이 놀랐을 거다. 병원에서 오는 길에 콩나물국밥 집을 봤다. 뜨끈한 콩나물국밥 한 그릇이 먹고 싶어졌다. 나나도 같이 먹었으면 좋겠지만 안 되겠지. 병원에서 치료 좀 받게 해준 것뿐인 주제에 나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병원에서 퇴원했으니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서 주고 싶다. 고양이는 뜨거운 것을 먹지 못한다지만 그래도 국물을 먹으면 속이 사르르 풀리지 않을까. 따뜻한 물에 향기로운 비누를 풀어서 목욕도 시키고 싶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나나는 지금 어서 빨리 예전처럼 동네를 자유롭게 누비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걸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냥 나나를 동네에 풀어 주지 않고 이대로 내 방으로 데리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 의외로 나나가 그걸 원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고양이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별 상상을 다한다. 내가 나나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책임을 진다는 건방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나나와의 관계는 예전처럼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대로 나나를 놔줬는데 나나가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지. 나에게 배신감 느껴서 다시는 내가 주는 밥을 먹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럼 너무 서운할 텐데. 서운하다는 감정은 역시 귀찮은데. 전화도 할 수 없는 길고양이에게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큰일이다.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나나를 들고 택시에서 내렸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 나나를 풀어 주는 게 좋겠다. 나는 나나의 삶을 알지 못한다. 나나는 길고양이고 나는 사람이다.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같은 사람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내가 길고양이와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나나가 다시 밥을 먹으러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난 그래도 나나를 병원에 데려갔으니까. 나나의 다리를 낫게 해줬으니까. 덫을 바닥에 내려놓고 문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하나 둘 셋 하고 문을 열면 나나가 뛰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저기 멀리서 다리를 다친 고양이가 절뚝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누구지? 나는 눈을 찡그리면서 그 고양이를 쳐다봤다. 나나? 나나다. 그럴 리가? 나나는 덫 안에 있는데. 나나일 리가 없다. 나나는 이미 다리 치료를 받고 오늘 퇴원했다. 그런데 저 고양이는 나나다. 나나와 똑같은 색깔의 털과 무늬를 가지고 있다. 몸 크기도 비슷하다.“넌 누구니?”물어봤지만 고양이가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말은 정확하게 하자. 대답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알아듣는 언어로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나나가 둘이었나. 그렇다면 누가 나나고 누가 나나가 아닌가. 동물병원에서 오늘 퇴원한 고양이는 나나가 아닌가. 둘 중 누가 나와 소통하던 고양이인가. 아니 소통을 하긴 했나. 소통이란 무엇인가. 진짜 소통을 했다면 왜 난 다른 고양이 두 마리를 구별하지 못하는가. 나는 누구를 나나라고 불렀는가. 애당초 구분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나. 구분을 했다면 대체 뭐가 달라졌을까. 구분이 의미가 있긴 했나.난 나나가 들어 있는 덫을 들고 방으로 올라와 버렸다. 어쩌면 나나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나는 나나와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