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7일 수요일

[페이퍼] 여름은 뜨겁고 감기와 고양이는

+PAPER 2018 여름호에 실린 글입니다.

1. 

어제도 혼났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혼나고 나면 내가 정말 잘못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잘못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나.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분이 나쁘다. 난 왜 그 상황에서 죄송하다고 해버린 걸까. 내가 만만해 보여서 그런 걸까. 아니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한테 왜 그런 거지. 머리 스타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란 머리는 아무래도 그렇다. 머리가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내 직업을 맞추려고 한다. 

“디자이너 맞죠? 아, 아니다. 그럼 사진 찍으세요?” 

여기서 그만두면 참 좋으련만 맞출 때까지 멈추질 않는다.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도 별로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면서 왜 관심이 있는 척을 하는 걸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꼭 한마디 씩 한다. 콧물감기가 생각보다 오래간다. 아, 콧물감기가 아니라 코감기. 어제도 이것 때문에 혼났다. 약국에 약을 사러 갔다가 일어난 일이다. 

“콧물감기약 주세요.” 

아니, 콧물이 흐르는 감기니까 콧물감기 아닌가. 그런데 약국 아주머니가 “콧물감기가 어디 있어. 코감기지. 코감기!”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코감기를 콧물감기라고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낼 건 뭔가. 콧물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계속 흐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대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계절도 콧물도 마음도 고양이도 어떤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더워질 줄은 몰랐다. 29도라니.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덥다. 너무 덥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난 오뉴월 콧물감기 아니, 코감기에 걸려서 이렇게 훌쩍거리고 있다. 날씨는 덥고 콧물은 흐르고 나나는 보이질 않는다. 나나는 내가 밥을 챙겨주고 있는 고양이다.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리기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며칠 째 밥을 먹으러 오질 않는다. 

1년 넘게 밥을 챙겨주고 있지만 나나는 나와의 거리를 지킨다. 부드럽고 하얀 나나의 털을 만져보고 싶어서 몇 번 나나에게 손을 뻗어봤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도 내 손이 가까이 가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멀리 도망쳐버린다. 내가 물론 나나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지만 그것만으로 나나의 마음을 열 수는 없다. 겨우 밥이나 챙겨주면서 생색을 내면 안 되는 법이다. 사람도 고양이도 돈으로 마음을 열 수는 없다. 나나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방법에 대한 책은 있어도 길고양이의 마음을 여는 방법에 대한 책은 없으니까. 무수히 많은 연애 서적이 있어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연애 서적 같은 건 없는 것과 비슷하다. 이 세상에는 책에 나오지 않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다. 나나는 보이질 않았고 난 마음에 초조해졌다. 사라진 사람도 찾기 힘든데 갑자기 사라진 길고양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가깝다고 느낀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난 나나가 밥을 먹으러 올 때 말고는 무엇을 하고 어딜 가는 지 아는 게 없었다. 어디 갔을까. 어딜 갔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에어컨이 고장이 나버렸다. 왜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이 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리기사를 불렀지만 갑자기 더워진 탓에 일이 밀려 오늘 당장 오기 어렵다고 했다. 약 기운 때문인지 계속 눈이 감겼다. 덥고 졸리니 정신이 없었다. 나나는 주로 낮 시간에 밥을 먹으러 왔다. 혹시 모르니 집 앞에 밥을 들고 나가봐야 하지만 눈이 자꾸만 감겼다. 만약에 나나가 왔는데 내가 없다면 얼마나 실망할까. 아니지. 나나는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다닐 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며칠씩이나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아니다. 정말 아파서 며칠 동안 끙끙 거리느라 못 왔을 지도 모른다. 나가봐야한다. 해가 뜨거웠지만 바람이 살짝 불어서 오히려 집보다 밖이 더 시원했다.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초록색 나뭇잎이 빛 때문에 반짝거렸다. 저런 곳에 매달려있는 기분은 어떨까. 가벼운 나뭇잎의 삶 같은 건 나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어떤 고양이들은 높은 나무에도 휙휙 오르곤 하던데 혹시 나나가 나무 위에 올라가있는 건 아닐까. 난 고개를 들어 주위에 있는 나무를 살펴봤다. 그러나 역시 그럴 리가 없었고 오늘도 나나는 오지 않았다. 난 집에 다시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를 한 캔 꺼내서 마셨다. 감기약을 먹는 동안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나를 혼낸 사람의 말은 듣지 않을 거다. 
콧물감기나 코감기나 그게 그거지. 대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혼을 내고 그러나. 복수의 의미로 난 맥주를 마실 것이다.

2. 

복수는 실패했다. 감기는 더 심해졌다. 코는 사이좋게 한쪽씩 번갈아가면서 막혔다. 코가 막히니 머리도 아팠다. 아무래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으니 순환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야 할까. 물수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코 위에 올려봤다.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의사 선생님한테도 혼나면 어쩌지. 왜 이제 왔냐고 혼이라도 나면 난 어쩌지. 혼나는 일 만은 피하고 싶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혼날 일도 없다. 6개월 전에 헤어진 A도 나에게 화를 자주 냈다. 마지막으로 A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해!” 혼이 나면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사과를 했을 뿐이었는데 그게 싫었나보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자동적이었을 뿐이다. 정말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건 아니었다. A는 한숨을 쉬더니 나를 두고 가버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은둔형 외톨이 같은 건 아니다. 그냥 난 혼자가 편할 뿐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피곤하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고양이를 기다리는 일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갔을 경우엔 고양이 탐정에게 찾아달라고 의뢰를 하기도 하던데 길고양이를 찾아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모르니 검색이라도 해볼까. 뭐라고 검색을 해야 되지. 상수동 고양이? 아닌데 상수동 길고양이? 이것도 아니다. 상수동 길고양이 다리 부상? 정말 모르겠다. 검색이 가능하긴 한가. 모르는 일 아닌가. 혹시라도 누군가 다리 다친 나나를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갔을 수도 있지 않나. A가 싫어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 좀 그만하라고 혼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A가 없으니까 괜찮겠지. 포털사이트보다는 어쩌면 인스타그램 같은 데에서 검색을 해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A는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했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올렸다. 어디에 가서 어떤 걸 먹었는지 매일매일 올렸다. A가 셀카를 올리면 친구들은 하트를 눌렀다. A는 나랑 같이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싶어 했으나 난 언제나 싫다고 했다. A의 친구들은 커플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리곤 했다. A는 친구들처럼 나랑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 했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A는 뭐 어떠냐면서 나한테 답답하다고 말했다. A는 커플링을 맞추자고 했지만 난 그것도 싫다고 했다.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대체 왜 그러냐는 A에게 난 언제나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그 때 사진을 올려도 된다고 했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어차피 지난 일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상수동 고양이를 검색하자 총 209개의 사진이 나왔다. 난 밑으로 내려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혹시라도 나나의 사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어? 이거 나나 아닌가? 나나처럼 하얀 털에 커다란 점박이 무늬가 있는 고양이 사진이다. 사진을 클릭해보자 정말 나나였다. 세상에 나나를 찾다니. 사진 속 나나는 상수동 길 위가 아닌 철장 안에 있었다. 메시지라도 보내봐야겠다. 정말 이 사람이 나나를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간 사람일까. 어쩌면 나나와 비슷한 고양이 아닐까. 길고양이들은 쉽게 다치는 법이니까. 다리가 다친 나나를 닮은 고양이일 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일단 보내보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보내면 답이 오거나 안 오거나 둘 중 하나겠지. A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자주 받곤 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만나자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A는 이게 다 커플 사진을 올리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난 그래도 내 얼굴이 A의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건 싫었다. 좁은 세상인데 무슨 일이 있을 지 알 수 없으니까. A의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에 나가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답답했을 거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정말 그게 최선이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까. 막혔던 왼쪽 코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순간 메시지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이 고양이는 제가 몇 달 전부터 집 근처에서 밥을 줬던 아인데 얼마 전에 다리를 다쳤더라고요. 아는 분에게 덫을 빌려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지금 입원 중이예요. 혹시 괜찮으시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실래요?”
내일? 내일 별다른 일이 없긴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건 신경 쓰이는 일인데 괜찮을까. 그래도 나나를 치료해주신 분인데 괜찮은 사람 아닐까. 그걸 떠나서 나나를 만나고 싶었다. 나나가 맞을까. 아니 나나가 맞겠지. 나나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나나란 말인가. 난 바로 답장을 했고 약속 시간을 잡았다.

3. 

나나는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병원 안 쪽 어두운 방에 있었다. 각기 다른 철장 안에 있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나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나의 발에는 얇은 비닐이 묶여있었다고 했다. 비닐봉지를 뒤지다가 그런 모양이었다. 매일 밥을 챙겨줬는데도 나나에겐 부족했나보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비닐이 살을 파고들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흘만 더 있으면 퇴원을 해도 좋다며 입원한 김에 중성화 수술을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길고양이는 수술 후 귀를 살짝 커팅 할 경우 저렴한 비용으로 수술을 할 수 있다면서. 내가 잠깐 망설이자 그녀가 “반반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커피라도 한잔 할래요?”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가 커피를 마시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에어컨 수리기사는 내일 온다고 했으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나나를 보고 나니 마음이 왠지 놓여서 난 그녀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여름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A는 언제나 따뜻한 커피만 마셨다. 심지어 더운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A를 보고 있으면 가슴에 땀이 흘렀다. 처음 보는 사람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름엔 차가운 커피가 역시 최고다. 각 얼음을 입 안에 넣고 굴리자 온 몸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벌써 커피를 다 마시고 와그작 소리를 내며 얼음을 먹고 있었다. 차가운 커피의 맛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카페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겠지. 

“고양이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닌가.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밥도 챙겨주고 구조까지 해서 병원에 데리고 왔겠지.



“네. 고양이 좋아해요.” 
“그렇구나.” 

다시 정적이 흘렀다. 대화는 어렵다. 괜히 커피를 마시러 온 걸까. 그 때 그녀가 갑자기 나를 보며 ‘풉’하고 웃었다. 

“아니 왜 웃으세요?” 

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역시 사람은 만나는 게 아니었을까. 집에만 있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나나가 보고 싶어서 나온 것뿐인데 역시 병원 주소만 받았어야했다. 

“그렇게 갑자기 사람보고 웃으시면 기분 나빠요.”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자꾸 나왔어요.” 

내가 귀엽다고? 그럴 리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내일도 저랑 병원에 올래요?” 내일? 에어컨은 오전에 고치기로 했으니 오후에는 시간이 괜찮다. 그런데 내일 또 만나도 될까. 여름은 뜨겁고 감기는 여전한데 나나는 병원에 있고 나는 갑자기 내가 귀엽다는 여자와 마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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