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7일 토요일

[건강한 성 행복한 삶] 오르가즘을 연기하는 여자들

+대한남성과학회 계간지 <건강한 성 행복한 삶>에 기고한 글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잡지를 읽는 대다수의 독자는 이성애자 남성인 모양이다. 내가 처음 기고 요청 받은 글의 주제가 ‘남자들이여 언제까지 훼이크 오르가즘에 속을 텐가’였으니까. 솔직히 남성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드문 일이다. 섹스는 오랫동안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남성의 성욕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성의 성욕은 그렇지 않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를 대한민국 평균 남성들을 위해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이건희 회장의 성욕은 삼성 그룹 차원에서 신경써주지만 홍라희씨의 성욕이나 이부진씨의 성욕은 어떤가? 이래도 이해가 전혀 안 간다면, 남성의 성욕이 여성에 비해 강한 건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을 거라면, 이쯤에서 그만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남자들이 훼이크 오르가즘에 속건 말건 관심이 별로 없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훼이크 오르가즘에 속는 남자들보다는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다. ‘남자와의 섹스’가 즐거운 섹스를 하기 위한 필수요소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원래의 주제와는 살짝 다른 ‘여자들은 왜 오르가즘을 연기할까?’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얼마 전 4-50대 기혼 여성들이 많이 온 자리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 손 들어달라는 나의 요청에 열 명도 안 되는 여성들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물론 모든 여성이 오르가즘을 느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오르가즘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기 때문에 무엇을 오르가즘이라고 규정하는 가에 대한 부분도 쉽지 않다. 문제는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 없다는 여성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섹스가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어요. 왜 좋은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난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혹시 자위를 해본 적이 있는 지. 그랬더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내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남성들을 위해서 또 친절한 설명 들어가겠다.

여자와 남자는 태생부터 다르다. 태어난 순간부터 고추 달린 놈이라고 불리고 목욕탕 드라이어로 고추 탈탈 털어 말리며 자란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은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다. 난 목욕탕에서 자신의 성기를 드라이어로 말리는 여자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지금은 섹스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여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엄마는 학교 과제 자료로 정리해놓은 피임법 리스트를 보고는 사색이 되어서 나를 쪼았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통금시간도 있었다. 아마 우리 엄마는 나보다 더 빡세게 순결 교육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교육의 힘은 무섭다. 섹스를 하고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여성들, 파트너 섹스 경험은 있지만 자위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여성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왜 여성들이 왜 가짜 오르가즘을 연기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앞에서 말했다시피 여자들이 자라나면서 배운 거라곤 ‘몸을 소중히 여겨라’ 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파트너 섹스를 할 만한 나이가 되었으나 섹스에 대해 배운 건 역시 없다. 급해진 여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성잡지 섹스칼럼 등을 뒤지기 시작한다. 당신이 남자라면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온갖 핑계로 여자를 괴롭힌다. 심지어 여자들 읽으라고 만든 잡지도 여자를 괴롭히곤 한다. 믿을 수 없겠지만 많은 여성잡지에는 여자란 자고로 남자가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 항상 자기 자신을 가꾸어야 하며, 섹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최대한 남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왜? 남자는 생각보다 여린 존재들이라 너무 강하게 말하면 발기부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발기부전이라니 얼마나 무서운가. 여자들은 그래서 차라리 오르가즘을 연기하기로 결정한다. 작아도 좋은 척, 못해도 좋은 척. 남자 기 죽이지 않으려고 많은 이성애자 여자들은 쉽지만 어려운 그 길을 택한다. 자신의 성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여자들은 없지만 자신의 성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남자들은 많다. 그 탓에 못한다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표정을 짓는다. 작다는 말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가녀린 남성들을 위해 여성들의 연기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이쯤에서 아마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럼 어떻게 여성들의 가짜 오르가즘을 판별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인지라 건너뛰려고 한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서로가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결코 섹스를 못하는 남자나 성기가 작은 남자를 비웃고 싶지 않다. 작을 수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닌지라 전부 다르게 생겼다. 누구는 크고 누구는 작을 수 있다. 못할 수도 있다. 학교 다닐 때 누구는 수학을 잘하고 누구는 체육을 잘하는 것처럼 섹스도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사회는 섹스를 좋아하고 잘해야 진정한 남성인 것처럼 가르쳐왔다. 여성들에게 ‘순결’을 가르친 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부분이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온 남성들은 섹스를 잘 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섹스를 정말 좋아하는 지에 대한 고민도 하기 전에 섹스를 좋아하라고 강요받는다. 그 과정에서 섹스가 자신이 되고 성기가 바로 자신이 된다. 그렇다보니 여성 파트너에게서 섹스를 못한다거나 작다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분노가 치밀고 모래 한줌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 우울해진다. 그리고 여자들이 연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허리를 돌리는 순간에도 “좋아?”라고 물으며 자신의 ‘능력’ 즉 ‘남성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 안타까운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남성들이 자신을 괴롭혀온 ‘남성=섹스’라는 공식을 버리는 것이다. 섹스를 못하는 남성이 있고 내가 섹스를 못하는 남성일 수 있다는 부분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 문제는 조금씩 풀릴 수 있다. 그 부분을 인정하면 섹스를 못한다는 말을 듣거나 작다는 말을 들어도 결코 화가 나거나 슬프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고추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을 수 있고 생각보다 섹스를 못하는 남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여자들이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하지만 ‘남성=섹스’라는 공식을 깨는데 성공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첫 번째 관문을 넘어왔다면 두 번째로 가보자.

두 번째, 여성 파트너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나는 이제까지 섹스에 대해 글을 쓰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성들에게서 많은 편지를 받아왔다. 무작정 섹스를 해달라는 남성에서부터 섹스 상담을 받고 싶다는 남성까지 사연은 다양했다. 섹스 상담을 받고 싶다는 대다수 남성들은 놀랍게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나의 여성 파트너가 섹스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그런 메일을 받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그 남자는 자신의 여성 파트너와 얼마나 섹스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아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섹스에 대해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에게 섹스하자는 메일을 받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섹스를 말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허리를 들썩일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처녀막 수술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상황 설명은 충분하지 않나. 여자들과 섹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신뢰를 주어라. 섹스는 물론 몸의 대화지만, 더 나은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진짜 대화도 필요한 법이니까. 당연히 남성 스스로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도 벗어나야 진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세 번째, 섹스 토이를 사용해보자. 대화를 통해 여성 파트너로부터 작다거나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해도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겐 섹스토이가 있다. 여성파트너로부터 작다는 말을 들었다면 딜도 (원통 모양의 삽입할 수 있는 섹스토이. 실리콘, 나무, 유리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남자는 성기가 아니다. 알파고가 사람을 이기는 시대다. 기계는 점점 더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요리를 할 때를 생각해보자. 요리를 하는 중간에 믹서를 사용했다고 해서 ‘진짜 요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섹스토이는 더 즐거운 파트너 섹스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트레이닝을 거듭해도 사람이 바이브레이터만큼 빠르게 혀를 움직이거나 손을 움직일 수는 없다. 혹여나 노화 혹은 흡연으로 인해 더 이상 성기가 서지 않게 된다 해도 섹스토이와 함께라면 문제없다. 잠깐, 여기서 또 다시 작아진 기분이 들거나 ‘남자 체면이 있지 어떻게 내 고추보다 큰 딜도를 사용해?’라는 생각이 든다면 첫 번째를 제대로 넘어오지 못한 것이니 다시 첫 번째로 돌아가는 것을 추천하겠다. 독일 하노버와 베를린에서는 매년 섹스토이 박람회가 열린다. 섹스토이 산업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 굳이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물론 모든 여자가 섹스토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도를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네 번째, 아는 척하지 말자. 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섹스토이 상담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남성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여성 파트너와 즐거운 섹스를 하고 싶은 기특한 남성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은 상담에 응해주었는데, 백이면 백 섹스토크로 빠지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남성들의 상담 요청은 무시로 응답한다. 섹스토이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뽐내면서 섹스토크 하고 싶은 남자들 아주 진절머리 난다. 어떤 여자들은 자신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충분히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 입을 닫고 있다고 해서 여자가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라. 또 남자라고 해서 섹스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이 부분은 첫 번째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아는 척 하기보다는 대화를 시도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여자들은 남성과의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한번은 내가 운영하는 섹스토이 매장에 어떤 중년 남성이 찾아와서 물은 적이 있다. “왜 여자들은 남자랑 원할 때 섹스 할 수 있는데 저런 기구를 써요?” 난 가끔 남자들로부터 고민이라곤 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남자들이 부럽다. 여자라는 생물은 하나의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앞에서 왜 여성들이 가짜 오르가즘을 연기하는 지에 대해 적었지만 저것과는 또 다른 이유로 연기를 하는 여성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떤 여성분은 가짜로 연기하는 과정에서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한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나도 내가 내는 신음소리에 흥분한 경험이 있다. 어떤 여성들은 곧 죽어도 남성과 섹스를 하고 싶어 하겠지만 어떤 여성들은 남자보다는 여자와의 섹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보다는 섹스토이와 섹스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 정도 말했으니 충분하겠지? 난 친절한 사람이니까 다시 한 번 정리해주겠다. 지금 당장 귓가에 신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여자가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남성=섹스라는 공식을 버릴 것. 여성 파트너와의 대화를 시도할 것. 섹스토이를 사용해볼 것. 아는 척하지 말 것. 남성과의 섹스를 원하지 않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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