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일 일요일

[경향신문] 여자 인생에서 남자를 빼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아요

+경향신문 에서 <은하선의 섹스올로지> 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책을 내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강의라는 것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한 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그분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내 강의를 누구보다 열심히 듣던 분이었다.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누구보다 손을 먼저 들어서 질문을 하셨다.
“섹스토이를 사용하면 저출산 현상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요?” 
가뜩이나 저출산인데 젊은 여성들이 섹스토이를 사용하는 ‘재미’를 알아버리면 남자와 섹스를 하지 않으려고 할 테니 출산율이 내려가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참신한 질문을 받고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분은 이제까지 여성들이 남성과의 섹스에서 얻는 성적 쾌락의 결과로 임신을 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남성들의 성적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닌가. 여자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아이를 낳아서 키울 만큼 세상이 살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이 출산을 결심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의 출산율도 놀라운 수치 아닌가. 아니 정말로 저출산이긴 한가. 여자들이 아이 낳는 기계도 아닌데 아이 안 낳는 게 무슨 문제인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고 난 부유하는 생각들을 건져내 재치 있게 대답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 아직도 만약 그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때 제대로 답하지 못한 내 탓이 크다.
접시처럼 깨지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교육을 받으며 10대 시절을 지나온 여자들은 20대가 되자마자 몸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남자친구 때문에 얼떨결에 첫 섹스를 하게 된다. 그리고 30대가 되면 첫날 밤 순결하지 않은 신부를 어느 남자가 좋아하냐며 처녀막 수술을 하라는 산부인과 광고 메일을 받는다.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말 그대로 혼란스럽다. 여자들에게는 자신이 섹스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분명 이런 이중 메시지를 받으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강의했는데 어째서 여성들의 삶이 아닌 인류의 번영과 출산율을 걱정하는 질문이 들어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처럼 강의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와 전혀 다른 반응들이 돌아올 때가 종종 있다. 이제까지 충분히 남자를 위한 섹스에 집중했으니 이제는 우리를 위한, 여자를 위한 섹스에 집중해보자고 아무리 말을 해도 돌아오는 질문은 “30년 동안 남편과의 섹스에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어요. 섹스 테크닉을 알려주세요”와 같은 것들이었다. 남자를 빼고 섹스를 상상하는 것이 두렵기라도 한 걸까. 아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분이 30년 만에 남편과의 섹스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무엇을 오르가슴이라 명명하는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남편과의 섹스에 더 이상 기대하는 것보다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는 것이다.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내 말에 그분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강의 시간의 반 이상을 ‘여성’ 섹스 칼럼니스트로서 내가 남자들에게 겪는 온갖 수모들을 나열하는데 할애한다. 상대방이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짜고짜 ‘섹스하자’고 메일을 보내는 남자들, 걸레라고 욕을 하는 남자들. 내가 경험한 수많은 사례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자들이 더 이상 남자에게 힘 빼지 말고 자신의 섹스에 힘을 쏟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많이 남성 중심적인 섹스에 오염되어 있고, 그 벽을 뚫기에 내 강의가 너무 미미하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었다.
여성잡지 등 언론매체에서 여성 섹스 칼럼니스트에게 요구하는 글은 대개 정해져 있다. ‘오랫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애무를 건너뛰고 삽입섹스만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그가 애무를 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에 대한 해결책이다. 나에게 인터뷰를 청했던 매체도 이런 답을 원했을 것이다. “그가 혹할 만한 속옷을 입고 요거트나 초콜릿 같은 달달한 무언가를 몸에 발라 애무를 유도하세요.” 하지만 난 도무지 그런 글은 쓸 수가 없었다. 여자들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그런 대답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밥줄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후 난 서점에서 다른 ‘여성’ 섹스 칼럼니스트가 그렇게 대답해 준 글이 실린 잡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매체를 통해 주로 섹스에 대한 정보를 얻던 여성들이 강의에 와서 나에게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성들의 욕망보다 여성이 남성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에 집중하는 세상에서, 저출산은 애 안 낳으려는 이기적인 여자들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며 평생 살아온 여성들이 기껏해야 한 시간 반짜리 강의를 듣고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 뿐이다. 
세상에는 남자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가 가장 중요한 인생의 화두인 여성들이 존재한다. 그런 여성들에게 나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일 것이다. 남자들이 자신과 섹스를 하고 나면 헤어지자고 한다며 남자를 잡을 수 있도록 끝내주는 섹스 테크닉을 알려달라는 메일을 보내오는 여성에게 내가 과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여자의 인생에서 남자를 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들리기나 할까. 당신의 섹스 테크닉이 문제가 아니라 여자에게 섹스만을 원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 더 이상 그 관계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남성들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해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해가 끝나간다. 온갖 칼날이 ‘여성’을 향하고 있는 이 시점, 나는 어떻게 해야 여자의 삶에 남자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성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남자 없는 여자는 자전거 없는 물고기와 같다’는 명언을 곱씹으면서.’

댓글 4개:

  1. 그럼 자위만 하란 말인가요? 이성애자는 어찌하라구요. 사회생활엔 남자없어도 되지만 성욕해소에는 남자가 필요해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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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위만 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자기가 만족하는 방법이면 아무런 문제없지 않나요? 이성애자?? 이 단어는 왜 또 들먹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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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위만 하고 사는 것이 싫은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럼 어떻게 하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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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글이 비이성애자를 위한 글로 보이는게 이상하네요. 자위만 하라는 말로도 들리지 않는데요. 여성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잘 알고 파트너와 섹스 취향을 서로 맞춰가는 것이면 모를까. 남자를 붙잡기 위해 섹스테크닉을 이용하거나, 섹스를 남성 중심으로 생각하는 건 그리 건강한 신호는 아니죠. 성욕해소를 위해서 애무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남자를 계속 끌고 가야할까요? 강의에서 애무 유도 테크닉을 배우면서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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