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4일 화요일

[경향신문] 건전한 교육방송서 교복 입고 소위 ‘음란한’ 동성애 조장? 섹스는 조기교육하면 안되나

+경향신문 은하선의 섹스올로지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동성애 조장 방송’에 ‘학부모들’이 ‘음란 방송 폐지’하라며 연일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단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한 여성은 방송사 로비에 세워진 방귀대장 뿡뿡이 앞에 콘돔 씌운 당근을 던졌다. 또 한 여성은 아예 절규하며 방송사 로비에 누워 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논란의 방송 EBS <까칠남녀>에서 패널로 활약하고 있는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 오면서 많이 걱정됐다. 방송 이후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말 괜찮은가.
“솔직히 말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성소수자 방송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내보냈는데 반응이 전혀 없었다면 아쉬웠을 거다. 그분들이 양성애자 은하선, 바이 은하선이라고 불러주시면서 본의 아니게 양성애자 가시화 운동에 앞장서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 말씀 전하고 싶다. 다만 앞뒤 맥락을 다 자르고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퍼뜨리는 상황들을 여러 번 마주하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를 ‘음란 기구 파는 여자’라고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것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대체 음란하다는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건가.” 
- 섹스토이를 판매하고 있는 건 맞지 않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음란 기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걸 폄하라고 보는 건 피해의식 아닌가. 
“내가 이럴까봐 인터뷰는 안 한다고 한 거다. 나 원래 담배 안 피우는데 지금 열 받아서 담배가 다 피우고 싶어진다. 당신 대체 누가 보냈는가. 누구 열 받는 꼴 보고 싶어서 왔나.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 기다리든지 가든지 마음대로 해라.”
코트 하나 걸치지 않고 호기롭게 나갔던 그녀는 추위를 견디지 못했는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실례를 저질렀다. 죄송하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게 좋겠다.
“아니다.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아마 인터뷰 오기 전에 <까칠남녀> 관련 기사들을 읽고 오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사에 ‘음란’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음란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음탕하고 난잡하다고 나온다. 사전적 의미가 딱 떨어진다기보다는 애매모호하다. 사람에 따라 음란이라는 표현을 쓰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2014년에 모조 여성 성기가 있는 인형을 판매했다가 ‘음란한 물건’을 진열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풍속영업규제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판결을 내리면서 어떠한 물건을 음란하다고 평가하려면 단순히 저속하다는 느낌을 넘어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물론 법적인 의미대로만 ‘음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의 시위하시는 분들이 든 피켓을 보니 교육방송이 아닌 음란 방송이라거나 포르노 방송, 에로 방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더라. 음란이라는 표현을 어떠한 의도로 사용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다. 지금 호모포비아들의 행태를 보면 ‘음란’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서 성소수자를 폄하하고 혐오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또 성소수자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왜곡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그렇다면 ‘음란’한 자는 누구인가.”
- 그러니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음란’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많이 사용한다고 느낀다는 건가. 
“그렇다. 내가 방송에서 5년째 여성인 파트너와 동거 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두고 K일보에서 ‘음란 발언을 허용했다’고 기사를 썼더라.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어떻게 보고 있었기에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문장이 ‘음란 발언’으로 들리나. 성소수자는 누구랑 살아야 ‘음란’하다는 말을 안 들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아, 그리고 꼭 이 부분은 넣어줬으면 좋겠다. 해가 바뀌어서 이제 파트너와의 동거 6년째에 접어들었다. 고양이 두 마리랑 넷이 살고 있는데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기자님은 고양이 좋아하는가. 고양이가 정말 귀엽다. 털이 많이 빠져서 그렇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고양이 키우시면 캔 하나 드리려고 했는데 아쉽다. 한 마리는 턱시도고, 한 마리는 고등어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고양이 이야기를 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아 맞다. 음란.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방송에서는 전부 교복을 입고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에게 반말을 했다. 예능 <아는 형님>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런데 성소수자들이 교복 입은 것을 가지고도 뭐라고 하더라. 교복을 입고 나와서 동성욕을 부추긴다나 뭐라나. 그분들이 교복 입고 학교에 다니는 성소수자 학생들을 현실에서 만나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마 아직 어려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씀하실 거다. 성소수자들이 방송에 몇 번 나온 것 가지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왜 도대체 방송에 나오는 수많은 이성애자들을 보고도 누군가는 성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 그리고 그렇게 방송 한번만 봐도 ‘동성애자’가 된다면서 왜 굳이 아이들에게 위험하게 ‘동성애 금지’ 피켓을 들게 하는가. 아이들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가 뭐냐고 물으면 어쩌려고 집회에 데리고 오는 건가.”
- 학생들도 성소수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하다. 호모포비아들이 ‘동성애’라는 단어를 듣고 항문 섹스와 에이즈만 떠올리는 이유도 성소수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 젠더에 대한 교육은 어릴 때 받을수록 더 좋다. 성교육이라고 했을 때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말고 섹스를 하라고 가르치는 거냐’며 분노하는 학부모들이 계시더라. 그분들은 성교육에 대해 너무나 좁은 시각을 갖고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성’에 대한 교육은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의 외형적인 특징에 대해 설명하는 동요 ‘곰 세 마리’는 알고 보면 ‘사회 통념상’ 정상이라고 불리는 성 역할과 성 고정관념 그리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킨다. 요즘 유행하는 동요 ‘상어가족’도 그런 의미에서 ‘곰 세 마리’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하지 않을까. 이미 ‘섹스’를 가르치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섹스’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섹스를 가르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적이지 않은가.” 
- 바쁘신데 오늘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직 할 말이 많은데 이렇게 끝난다니 무슨 소리요. 기자 양반.”

※ 이 글은 은하선씨의 셀프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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