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4일 화요일

[경향신문] 성폭력 피해자처럼 입막음 강요 당해…성소수자도 ‘미 투’

+경향신문 은하선의 섹스올로지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성폭력 생존자 여성들의 끊이지 않는 고발이 온·오프라인에서 뜨겁다. 끊이지 않는 폭로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람들은 이제까지 없었던 것들이 발견되어 빛을 본 것처럼 쏟아지는 성폭력 피해 고발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시아의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는 성폭력이라곤 없는 줄 알았는데 놀랍다는 듯이 말이다.
왜 누군가는 성폭력을 두려워하고 또 성폭력을 말하기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데, 누군가는 새로운 것을 먹어 본 아이처럼 감탄하고 있는가. 왜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현실로 인해 생겨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피해의식일 뿐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었을까.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성폭력 은폐 의혹을 받은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은 “도대체 누가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였나. (…) 8년이 지난 후 두 여검사(서지현·임은정)가 이런 사실조차 알지 못한 저를 지목하여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였다고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답하며, 서 검사의 말이 ‘명예훼손죄’라는 의견을 밝혔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본인을 중심으로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현실 세계는 왜 이리도 비좁을까. 
지난 1월13일 나는 고정패널로 출연하던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에서 하차할 것을 통보받았다. ‘은하선의 <까칠남녀> 부당 하차 경위’에 관한 기사와 논평은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길 바라며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으려고 한다. <까칠남녀>는 젠더 불평등에 관한 첨예한 주제들을 다루는 토크쇼였다. 낙태, 노브라, 동거, 자위 등 다양한 이슈들을 도마에 올리는 데 성공했고, 시청자 게시판은 항의글로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연말연시를 앞두고 <까칠남녀>는 드디어 뜨거운 감자 중에 감자인 성소수자 특집 방송을 만들었다. 제작진들은 마치 여러 명의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동물원 코끼리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고, 혹여나 진지한 고민과 삶의 경험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무거운 공기가 두툼하게 깔린 방송이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토록 깊은 제작진의 고민과 패널들의 활약이 만나 궁금증을 풀어감과 동시에 성소수자 당사자의 이야기들이 쫀쫀하게 오가는 방송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이차로 인한 위계질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가 교복을 입고 반말을 하는 <아는 형님> 콘셉트를 빌려온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녹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난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방영날만을 기다렸다. 방영날은 마침 크리스마스였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다.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방송 예고편이 뜬 이후로 반동성애 기독교인 단체와 학부모 단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까칠남녀> PD는 방송을 앞두고 반동성애자들로부터 수십통의 문자를 받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LGBT는 개인을 멸망시킨다, 비이성적이고 잘못된 성도착증이다, 국민 모두를 죽이는 방송을 중단하라, LGBT는 가정을 파괴한다’ 등 하나같이 성소수자 혐오가 가득한 내용의 문자였다. 그들은 성소수자 혐오를 자신들의 정당한 ‘입장’인 것처럼 포장하고 성소수자와 자신을 완벽하게 분리하면서 성소수자 당사자인 나의 존재를 유령 취급하고 있었다. 양성애자인 나는 성도착증 환자이자, 국민 모두를 죽이며, 가정과 국가를 파괴하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성소수자는 왜 보이지 않는 투명하고 흐릿한 괴물이 되어 버렸을까. 그리고 그런 성소수자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방송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왜 개인은 원하지 않는 문자 테러 속에서 괴로워해야 할까. 
나는 페이스북에 <까칠남녀> PD에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내용의 문자를 더 이상 보내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서 글을 썼다. <까칠남녀> PD의 연락처가 바뀌었으니 항의를 하려면 이 번호로 문자를 보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리고 <까칠남녀> PD의 번호 대신에 문자메시지를 한 통 보낼 때마다 퀴어문화축제에 3000원씩 후원이 되는 번호를 적었다. 하지만 반동성애자들이 내 글을 보고 문자를 보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성명서를 통해 <까칠남녀>에 출연하는 양성애자 은하선을 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 글을 믿고 그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원하지 않게 퀴어문화축제에 후원을 하게 된 반동성애자들이 생겨나고 말았다. <까칠남녀>의 고정패널이자 누구보다도 방송이 문제없이 나가길 바라며 제작진이 반동성애자들로부터 안전하길 바랐던 내가, PD의 전화번호를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올릴 거라 생각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본인들이 욕하던 존재가 본인들에게 호의를 베풀 거라 생각했단 말인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글을 내리고 해당 번호는 퀴어문화축제 후원 번호라고 안내를 했으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문자를 보낸 후였다. 
자신들이 무엇보다 혐오하는 ‘퀴어문화축제’에 후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은하선이 사기를 쳤다고 말했다. 또 인증하기 위해서 자신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올렸다. ‘생명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고 계신 것, 생명을 죽이는 문화사고, 아이들이 죽어가는 방송, 나라의 근간을 해치는 동성애, 학생들을 동성애에 빠지게 하는 방송, 동성애가 에이즈의 주원인, 양성애자에 의해 이성애자에게 에이즈가 펴져 나간다’ 등 문자에는 심각한 성소수자 혐오 표현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떳떳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면서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보지 못한 채 오히려 나를 범죄자로 취급했다. 의도는 분명했다. 나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그 페이스북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았을까. 글쎄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죽이고 국가를 파괴’하는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성소수자의 삶은 이성애자인 본인과 관계없기 때문에 쉽게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성소수자를 나라를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는 괴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차별과 혐오를 견디지 못하고 싸우는 이들은 살아있는 한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2011년 한양대학교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위원회 준비위원회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의를 통해 인준받았으나, ‘성소수자가 학내에서 받는 차별은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생들에 의해서 그야말로 ‘공격’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위원회 건설 여부를 찬반 총투표로 결정하자며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오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게이가 싫으면 여기에 서명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잇따르기도 했다. 같은 해 한양대학교에서는 한 강사가 수업 중 ‘동성애는 엄마가 태교를 잘못해서 생기는 일이니까 태교를 잘하라’고 말했다. 성소수자가 학내에서 받는 차별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관심 밖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입을 틀어막고 듣지 않으려고 하는 현실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성소수자는 본인의 경험을 폭로하며 싸우려고 하는 순간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경계에 놓인다. 성소수자 여성은 성폭력과 차별의 경험들을 끊임없이 오가며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참고로 나는 8년 만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가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2003년 천주교인이자 동성애자였던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육우당이 동성애자를 향한 인신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유령 취급하는 사람들 때문에 살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되거나, 유령취급을 당하다가 유령이 되어버리는 것이 성소수자 그리고 여성의 삶이라면 차라리 난 범죄자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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